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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11월 07일 - 종교개혁 그리고 마인츠


지난 주일은 종교개혁일을 기념하여 „주님의 말씀을 발견하는 교회와 성도“가 되기를 다짐하는 감사 예배로 드렸습니다. 흔히 독일에서의 종교개혁하면 마르틴 루터가 95개조 반박문을 게재한 비텐베르크 혹은 루터가 재판을 받았던 보름스 등을 생각하게 됩니다. 우리 공동체가 신앙 생활의 터전으로 하고 있는 이 곳 마인츠를 종교개혁의 도시로 인식하고 있는 분은 많지 않으리라 여겨집니다. 종교개혁의 역사에 있어서 마인츠라는 도시의 역할에 대해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지려 합니다.


많은 학자들이 1517년 10월 31일 마르틴 루터의 반박문 게재의 직접적인 계기로 소위 „면죄부“ 판매를 지적합니다. 상업의 발달과 르네상스의 영향으로 교황 Leo 10세는 바티칸 성당 개축 등을 위해 많은 자금이 필요하게 되었고, 그로 인해 성경에 근거하지 않은 면죄부를 판매하게 되었습니다. 면죄부 판매에 있어 가장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였던 사람이 바로 당시 마인츠 대주교였던 Albrecht von Brandenburg입니다. 당시 종교법상 겸직이 불법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마인츠 외 몇몇 지역의 주교를 겸직하기 위하여 로마 교황에게 뇌물을 주어야 했었던 그는 독일에서의 면죄부 판매 전체를 관장하는 것을 넘어 판매액의 절반을 자신의 주머니로 착복하게 됩니다.


당시 신성로마제국의 황제는 혈통에 따라 계승되는 것이 아니라, 7명의 선제후들에 의해 선출되었습니다. 황제 선출을 위한 회의 소집의 권한을 바로 마인츠 대주교가 소유하고 있었고, 또한 만약 양쪽 표가 동일할 경우 그가 지명한 사람이 황제가 되는 막강한 권한을 보유하고 있었습니다. 마인츠 대주교는 1520년 독일어를 한 마디도 하지 못하는 스페인 출신 카톨릭 교도인 Karl 5세를 황제로 삼아 개혁 운동을 저지코자 하였습니다. 종교적 신념과 함께 민족적 / 정치적 이유로 인하여 몇몇 제후들이 Karl 5세의 반개혁적인 조치에 반항하였고, 그 결과 1521년 Speyer 제국의회를 계기로 새로운 개혁 운동은 „Protestant“라는 이름으로 불리우기 시작하였습니다. 마치 초대 교회 성립기에 안디옥 교회에서 „기독교인“라는 이름이 처음 불리었던 것과 같은 역사가 되풀이 되었던 것입니다.


독일의 조그마한 한 도시에서 마르틴 루터라는 한 알려지지 않은 성직자에 의해 게재된 종이 몇 장이 종교개혁이라는 거스를 수 없는 역사의 물줄기가 되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잘 아시다시피 루터의 반박문과 번역된 독일어 성경이 그토록 급속히 확산된 결정적인 이유는 바로 마인츠에서 태어난 Gutenberg에 의해 발명된 금속활자에 기인합니다.


이처럼 마인츠라는 한 도시는 작은 촛불 하나가 큰 빛으로 밝게 퍼져나는 데에 있어 크게 드러나지는 않지만 고비마다 매우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었습니다. 종교개혁이 시작된 순간에도, 그 개혁운동이 „Protestant“라는 저항운동으로 확산되는 전환의 순간에도, 그리고 그 개혁운동이 시작되기 70년 전 이미 성공의 토대가 준비되었던 순간에도 마인츠라는 도시는 조용히 그 사명을 담당하고 있었습니다. 마인츠에서 말씀을 찾아 참된 믿음을 지켜나가기를 소망하는 우리 공동체를 통하여 오늘도 그 믿음의 촛불이 작지만 밝게 빛 나기를 소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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